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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예배 설교

2023년11월26일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사도행전18장18~23절)

작성자 오병근목사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3-11-28 15:22
갈수록 심해지는 고린도 유대교인들의 대적과 비방,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된 바울은 어느 순간부터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이전과는 달리 유대인들 앞에서 침묵하며,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주님께서 한 밤 중 환상으로 찾아가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그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고린도 땅에는 구원 받아야 할 당신의 백성들이 많기에, 그들이 구원받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약속과 말씀을 굳게 믿은 사도 바울은 다시 힘을 내어 담대하게 고린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당신께서 그와 함께 계시며, 그 누구도 그를 대적하고 해롭게 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당신의 약속을 사도 바울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아가야의 총독으로 갈리오라는 사람이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당장 소스데네의 주도 속에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고소하여 법정에 세웠습니다. 고린도 유대인들은 갈리오 총독이 이제 막 부임하여 아직 고린도의 사정에 어둡고, 여론에 민감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판결해 줄 것이라 믿고, 사도 바울을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며 고소했습니다. 이는 분명 종교에 관한 문제였지만, 그들은 사도 바울이 마치 정치적으로 로마법을 어긴 것처럼 억지주장을 하며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갈리오 총독은 그들의 고소가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임을 분명히 하며, 자체 해결을 지시하고 법정을 산회하였습니다. 하지만 회당장 소스데네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법정을 떠나지 않고, 갈리오 총독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령에 불복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고소를 재판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갈리오 총독은 자신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법정에서 강제로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부터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고린도의 헬라인들은 오만불손한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그들의 총책임자로 보이는 소스데네를 붙잡아 집단 폭행을 가했습니다.
  회당장 소스데네와 유대인들은 무고한 사도 바울을 갈리오 총독을 이용하여 완전히 제거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해를 당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처럼 자신과 함께 하여 주심으로, 고린도 유대인들의 대적과 위해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셨음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는 1년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린도에서의 모든 사역을 담대히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오늘 본문 18절 상반절 말씀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오늘 본문은 회당장 소스데네와 유대인들과의 사건이 있은 후, 바울이 여러 날 고린도에 머물러 있다가, 배를 타고 고린도를 떠나간 사실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여러 날’이라고 번역함으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며칠 동안 더 머문 것처럼 보여지지만, 원어성경에서는 ‘충분한’, ‘충분하게 많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하여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갈리오 총독의 판결 이후 충분히 많은 시간을 고린도에 머물러 있다가 떠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사건 이전까지는 고린도 유대인들의 대적과 비방,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는 가운데, 불안함 속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이 사건 이후로 사도 바울은 영과 육의 안식 속에 복음 전파를 위한 충분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음을 본문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등과 같은 전도 여행지에서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험한 상황들로 인해 급히 서둘러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야 했었지만, 고린도에서는 끝까지 안식 속에 충분한 여유를 갖고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음을 본문은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고린도를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전도여행의 출발지였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과 동행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5주 전에 살펴본 것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천막 제조업을 하며 지내던 사람들이었으나,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들의 로마 추방령으로 인해, 천막 제조로 돈을 벌기에 최적의 장소라 여겨진 고린도로 이주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그들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과 함께 일하고 동거하는 가운데 생명의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사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2차 전도여행을 끝낸 사도 바울과 계속 동역하기 위해 고린도를 떠나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 해 그들은 복음 사역을 위해 지금까지 고린도에 일구어 놓은 사업과 삶의 터전, 고린도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자신들의 앞날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사도 바울이 전해 준 복음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관과 목적이 완전히 달라진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들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천막 제조업자가 아닌, 천막 제조를 수단 삼아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바울과 함께 동역하기 위해 기꺼이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고린도를 떠난 것입니다. 
  이어지는 18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중심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외항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은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머리를 깎는다고 할 때에는,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한 행위로 여겨지지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머리를 깎은 이유는, 하나님께 일찍이 서원을 하고, 그 서원한 기간이 다 끝났기 때문에 머리를 깎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행동은 구약의 나실인 서원 규례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나실인 서원 규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실인의 서원’이란,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려는 사람이, 일정한 서원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위해 소유를 드리거나, 봉사와 섬김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의 서원 기간 동안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독주는 물론이고, 포도주, 포도즙, 포도로 만든 초 조차도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포도로 만든 음료를 마시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에 석회가 섞여 있기 때문에, 생수를 그대로 마시지 않고 항상 포도를 발효시킨 포도주나 포도즙, 포도 초를 식사와 함께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포도로 만든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인 먹는 것에서부터, 비록 석회수를 마심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포도로 만든 음료를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결단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 속 독주와 포도주는 술 취함으로 얻어지는 육체적 쾌락이나 세상적인 사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술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자극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까지 만듭니다. 그러므로 포도로 만든 음료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깨어 있기 위해 모든 쾌락과 사치, 세상의 풍조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서원하여 구별하는 날 동안에는 절대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머리는 심장과 더불어 그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머리카락에 삭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내어 드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들은 서원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음으로 머리카락은 장발이 되고 산발이 된 상태였으며, 서원 기간이 끝나면 서원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명령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모나 형제나 자매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서원 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그 시체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산물이요, 정죄요, 심판이며, 저주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결과물인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나실인 서원 기간에는 죄악의 결과로 생겨난 죽은 자의 시체와의 접촉을 금한 것입니다. 시체와 접촉을 했다는 것은 곧 죄악과 접촉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체를 멀리하라는 것은 죄와 멀리하라는 의미이며,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죄와의 접촉 가능성조차 아예 없어야 함을 강조하여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철저한 성결이 나실인이 서원 기간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임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자원하여, 나실인의 서원을 하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서원한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봉사와 헌신을 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겠습니까?
  유추해 보자면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어떤 계기나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로 나실인의 서원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기꺼이 서원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온전히 지키며, 그 명령의 의미를 깊이 상고하면서,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을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 놓는 나실인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겐그레아에 도착한 이후,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는 본문의 증언은 그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원을 시작하였고, 아마도 서원이 끝나는 기점을 고린도에 머물러 있는 동안으로 정하였기에, 고린도를 떠나게 됨으로 서원 기간이 끝나 겐그레아에 도착한 이후 머리를 깎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고린도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서원을 하게 된 계기가, 앞선 본문들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한밤 중 환상 가운데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라 약속하여 주신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또 그 약속하신 대로 자신과 함께 하사 회당장 소스데네를 비롯한 유대인들의 대적과 자신을 해롭게 하려는 그들의 시도로부터, 자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갈리오 총독과 법정을 참관하게 된 고린도 헬라인들을 사용하시어 자신을 지켜주신 주님의 그 은혜 때문에,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자, 일정 기간 서원을 하고, 더욱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며, 주님이 맡겨주신 사역에 전심전력을 하게 되었던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에서의 모든 사역을 끝맺고, 자신의 결단한 서원 기간을 마침으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는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지난 1년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과 함께 해 주시고,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와, 또 고린도에서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주님께서 앞으로 보내질 사역의 자리에서 얼마나 큰 역사를 이루실지에 대한 기대와 사모함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덧 2023년도 이제 마지막 한 달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어떤 감회가 드십니까?
  아마도 모든 분들에게 지난 시간들 속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가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겪는 그 순간에는 큰 두려움에 빠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도 이르셨을지도 모른다 생각되어집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신 주님께서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요, 사도 바울을 모든 대적들의 해롭게 하려는 시도로부터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를 해롭게 하려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시간들을, 특별히 다음 주부터 시작될 대림의 절기를 나실인의 서원 기간으로 결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있기보다는, 독주와 포도주를 멀리하듯 영적으로 깨어 있음으로 겸손히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를 오직 하나님께 의탁하기 위해, 생명을 상징하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듯, 나의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산 제물로 내 자신을 드리고, 또 새로운 한 해 오직 나의 생명과 삶을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직 성결함으로 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해, 죄의 결과물인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듯, 지나온 나의 삶 속에 들어 있던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의 보혈로 온전히 씻음 받고, 성결함 가운데 나아가기를 결단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한다면, 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 또한 지난 한 해에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한없는 사랑과 은혜 때문에 감사와 감격으로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이요, 새로운 한 해를 기대와 소망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지나 온 한 해와, 맞이할 새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헤아림으로 나실인의 서원의 시간들로 그 시간들을 채움으로, 한 해를 아름답게 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소망과 기대와 사모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이와 같은 믿음과 이와 같은 은혜가 부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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